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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61건)

삼양정사 三陽精舍
북구 용봉동   용봉동에 있었다는 삼양정사는 광주 봉곡리鳳谷里에서 태어나 자란 술재(述齋) 안종기(安鐘基, 1881~1949)가 국치의 변을 당해 출사를 접고 동지들과 구인회를 만들어 은거하며 유민으로 삶을 지내다 생을 마감한 곳이다. 창평 삼인산三人山에서 삼양정사를 짓고 후진교육에 전념했다는 기록도 있어 확
봉산정사 鳳山精舍 엄이재 掩耳齋
서구 용두동 산 79번지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 깊숙한 꽤 높은 곳 봉황산 가파른 중턱에는 한 지식인이 시대적 아픔에 어쩌지 못하고 읍궁암泣弓菴에서 울분을 삭히며 세상을 마감했던 유서 깊은 흔적이 있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서쪽 30리의 거리인 봉황산에 위치해 있다.주변에 큰 은행나무가 자리하고 봉산
무송정 撫松亭
남구 칠석동 30 (이리마을)   참봉 서태환徐台煥(1857~1940)이 세상을 비관하여 숨어 지내기 위해 고싸움놀이 전수관 바로 뒷편 마을에 당시의 일제강점기 세상을 비관하여 스스로 종적을 감추기 위해 1922년에 건립한 정자이다. 서태환이 젊어서 문학적 재능이 있어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으나 한
남덕정 覽德亭
남구 석정동 120   석정동 출신의 나주나씨 지재 나창을 선조로 1881년 덕암德巖 나도규羅燾圭(1826-1885)가 건립한 휴양 겸 강학소인 초가이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서쪽 30리에 있다. 마을 북쪽 길로 가다보면 왼쪽 모퉁이에 남덕정이 자리하고 있다. 현와 고광선 등에게 성리학과 도덕을 전수하여 수많은 인
균산정 筠山亭
북구 무등로 1550(청풍동, 신촌마을) 균산정은 북구 청풍동 신촌마을 초입에 있는 정자이다. 《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동쪽 10리에 있다. 균산筠山이란 대나무의 살갗처럼 추운 겨울의 눈보라에도 그의 절개가 변치 않음을 뜻한다. 노사 기정진 선생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은 남평 문씨 균산筠山 문용현文龍鉉의 유
괴양정 槐陽亭
북구 무등로 1550 (신촌마을)   괴양정槐陽亭은 속칭 비산술산이라는 남평문씨 신재공파 소유의 선산 계곡 위에 있다. 이곳은 북구 석곡월산길 119(망월동) 경렬사에서 광주 4수원지 쪽으로 가다가 우측으로 ‘신촌마을’ 초입에 표석을 끼고 마을로 들어서면 팽나무. 마을 안쪽 냇가 석곡천이 나온다.신촌마을 앞
관호정1 觀湖亭
남구 화장동 (농막마을)  마을 뒤 언덕에 계남桂南 김정수金鼎洙가 지은 정자가 있었다. 농막부락 김인규씨 집 뒷편 숲속에 있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고 대숲만 썰렁하게 남았다. 관호정의 상량문에 따르면 1932년에 건립되었다.주변에 연방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함지(陷地)가 남아 있다. 영산강이 바라보이고
봉산사 / 鳳山祠
광주광역시 서구 용두동 봉황산 구릉지대고광선(高光善)을 배향하는 사우1906년 창건1906년 지역유림과 제자들이 고광선을 기리고자 건립사당 :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봉산사 묘정비추모제 유허비상의문(솟을대문)엄이재(掩耳齋) : 정면 4칸, 측면 1칸, 팔작지붕향사인물: 고광선(高光善, 1855~1910) 본관-장흥(
원풍정(願豊亭) 소해정(蘇海亭) 만주사당(晩洲祠堂) 경의재(景義齋 )
북구 소해로 11 (일곡동)광주광역시 북구 일곡동은 조선 시대 광주목 석제면에 속했고, 호구총수에 일곡촌(一谷村)이 기록되어 있어 지명의 유래가 오래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래서 전통적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일신재나 그중에 구한말 일대의 선비들이 구국의 일념으로 머물렀던 유서 갚은 곳이다. 원풍정(願豊亭)
고광선
고광선(高光善, 1855~1934)의 본관은 장흥(탐라)이며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자는 원여(元汝) 호는 현와(弦窩)이다.  서창면 용두리에 살았다. 1855년(哲宗 6) 光州 復村에서 湖隱 高璞柱와 행주기씨 禹鎭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선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인 霞川 高雲과 忠烈公 高敬命의 직계후손이다. 어려서부
정인서 문화비평 43, 이용섭 시장의 1년 "들여다보니!"
민선7기 이용섭 광주시장에 대한 지난 1년의 평가는 어떠할까.좋은 평가도 있고 좋지 않은 평가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기와의 관계성에 따라 자기중심으로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지난 1년 동안 광주시의 각종 현안사업과 앞으로의 미래사업들에 대한 수많은 내용들이 있겠지만 우선 시민들이 시장을 바라보는 인
<光州西倉>, 서구문화원 인문학총서 제1권 발간
설날 전후로 많은 이들이 고향을 다녀갔다. “예전 그대로인데!”, “와, 많이 바뀌었네.” 등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다.광주 서구 서창동을 다녀간 이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마을에 따라 바뀐 모습의 양상이 크게 다르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극락’이다.우리나라에서 ‘극락’이라는 지
김해김씨쌍효유적비2
광주시 광산구 본덕동 마곡마을1920년이 김해김씨쌍효유적비(金海金氏雙孝遺蹟碑)는 진주강씨 문중에서 관리한다. 현와 고광선이 짓다.
이용헌-조선유민오산이공지비
광주시 북구 오치동 956-8(오산정 내)1923년이 조선유민오산이공지비朝鮮遺民梧山李公之碑는 오산梧山 이용헌李龍憲의 묘비로  현와 고광선高光善이 짓고 종2품 가선대부 전 참판 이우명李愚明이 쓰다.  오산정 앞에 있었다. 오산정은 부친을 위해 아들인 송천松泉 이계익李啓翼이 지었다고 한다.현재 오산정과 이
정인서 문화비평19, 광주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자
광주를 걷는다. 광주에 주민등록을 두고 살기 시작한 지 40여년이 되었는 데도 아직도 모르는 광주의 기억들을 찾을 때마다 새롭기만 하다. 신문기자 생활을 30여년 했으니 제법 오래 했고 문화원장을 맡은 지도 4년이 지났다. 자연스레 지역문화에 애정을 쏟고 있다.지난해 <양동시장에서 서창 들녘까지>라는 서구지
정인서 문화비평 18 광주에 기록이 없다
광주에 쓸 만한 기록이 없다. 책이나 잡지를 출판하거나 광주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필요한 사진, 영상, 설화, 역사적 자료 등 원스톱서비스가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기반 기록이 없다는 이야기다. 기록 하나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보고 검색을 하는 데 들이는 시간 허비가 많다.물론 기록은 있다. 광주광역시와 일선
서구문화원, 17일 광주지역 문화답사 가져
광주 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은 17일 문화원 회원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9월중 지역문화답사로 벽진서원과 박호련 묘소, 봉산정사, 용두동고인돌 등을 둘러보고 지역문화와 스토리텔링에 대한 방안 등을 논의했다.이날 첫 방문지는 풍암동 벽진서원으로 이곳에 향사된 회배 박광옥은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김천일과 함께
정인서 문화비평13, 광주, 문화콘텐츠를 놓치고 있다
솔제니친은 러시아의 작가이다.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스탈린 시절 강제노동수용소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작품을 발표해 세계적인 작가로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그 이후로도 비판적인 글들을 발표했다. 1974년 2월 시민권 박탈과 강제 추방당했다.소련 붕괴 이후 1994년 20년간의 망명
고광선-戒兒曹 아이들을 경계함
古苑有雙木 고원유쌍목  옛날부터 뜰에 나무가 둘 있었다. 今朝盡伐之 금조진벌지  오늘 아침 그들을 모두 잘라서其一犧樽作 기일사준작  하나는 제사용 잔을 만드니靑黃文彩奇 청황문채기  푸르고 누른 무늬 훌륭하였다.             &nb
고광선-省蘆沙先生墓遺感 二首
一聲慟哭銷靑山 일성통곡소청산  한바탕 통곡소리 청산에 흩어지고 感淚徒傷咫尺閒 감루도상지척한  지척에 있는 제자들이 슬피 우도다. 若使九原靈不昧 약사구원령불매  만일 구천의 영혼이 어둡지 않으시면 應知小子此時還 응지소자차시환  소자가 이때 오는 줄 응당 아시겠지. 音容永邈此江山 음용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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